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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경제는 공존할 수 있을까? – 지속가능발전에서 디그로스(Degrowth)까지

by 40대 유학&여행 202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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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환경과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슈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한쪽이 약화된다는 인식은 여전히 널리 퍼져 있지만, 과연 그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기만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영국 석사과정에서 다룬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환경과 경제 사이의 긴장과 조화 가능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책적 접근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1. 성장의 한계와 전통적 패러다임의 문제점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는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무한한 경제 성장이 자연 환경에 어떤 한계를 초래할지를 경고한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경제와 환경 사이에 불가피한 긴장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 데이터나 모델링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전통적 정책 패러다임은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이 상충한다고 가정했습니다. 환경 보호는 필연적으로 경제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경제 성장은 곧 환경 파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죠. 이 패러다임은 '규제'를 주요 정책 도구로 삼아, 문제 발생 후 뒤늦게 대응하는 방식의 '사후 처방적(end-of-pipe)' 접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환경 문제를 별개의 정책 영역으로 취급하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대응하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환경-경제-사회 시스템을 다루기에는 너무 기술 중심적이고 단편적인 대응이었던 셈입니다.


2. 지속가능발전: 모두를 위한 균형점?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제시된 정의에 따르면,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해치지 않는 발전"입니다. 이 개념은 이후 1992년 리우 지구 정상회의(Agenda 21)와 2015년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을 통해 세계적인 정책 패러다임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지속가능발전의 핵심은 ‘세 가지 기둥’ – 경제 성장, 사회적 형평, 환경 보호 – 사이의 균형입니다. 즉,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복지를 충족시키고, 사회 내외의 불평등 문제까지 포괄하려는 포괄적인 접근이죠. 이러한 개념은 단순한 성장 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비판도 존재합니다. 지속가능발전은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려다 보니 구체성이 떨어지고, 결국 기존 성장 중심 논리를 강화하는 수사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모두에게 들리는 좋은 말(metafix)’이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구조 변화보다는 녹색 소비주의(Greenwashed Consumerism)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3. 생태적 현대화: 환경을 성장의 기회로?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자 등장한 개념이 바로 생태적 현대화(Ecological Modernisation)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이 이론은, 급진적 탈산업화보다는 기술 혁신과 제도 개혁을 통해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태적 현대화론자들은 환경 문제를 ‘기술-제도적 수단(techno-institutional fix)’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도 산업 생산을 지속할 수 있고, 오히려 환경 보호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죠. 에코세금, 탄소배출권 거래제, 자발적 협약 등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정책 수단입니다.

 

이 이론은 유럽연합(EU)의 환경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실제로 조약문에도 ‘균형 잡힌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태적 현대화가 실질적이지 않고, 기업 중심적이며,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여전히 ‘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녹색성장과 디그로스: 상반된 대안

2000년대 이후 녹색성장(Green Growth)은 기후위기와 금융위기를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해법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세계은행, IMF, OECD 등 주요 경제기구와 정부들이 이 개념을 채택하면서, 청정에너지, 친환경 인프라, 녹색 일자리 창출이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녹색성장 역시 기존 성장 모델의 연장선에 있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일부 국가들, 특히 남반구 개발도상국들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에코-식민주의(eco-colonialism)”로 보기도 했습니다. 환경을 이유로 자국의 성장을 억제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죠.

 

이에 반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바로 디그로스(Degrowth)입니다. 디그로스는 단순히 '성장을 줄이자'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의 축소를 통해 생태적 지속 가능성과 삶의 질을 높이자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제안입니다. 물질적 축적을 삶의 목표로 삼는 문화 자체를 성찰하고, ‘성장 아니면 죽음’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물론 디그로스는 현실 정치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고, GDP 축소가 곧바로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하지만 환경 위기의 심각성과 지금까지의 접근 방식의 한계를 고려할 때, 보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맺으며: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패러다임 – 전통적 성장모델, 지속가능발전, 생태적 현대화, 녹색성장, 디그로스 – 모두는 환경과 경제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자 철학입니다. 이 중 어떤 접근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단기적인 성장 논리를 넘어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술과 제도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도, 모든 성장을 포기하자는 이상주의도 아닌, 보다 균형 잡히고 성찰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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