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환경정책은 특별한가?
환경정책은 단순히 ‘지구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정치·경제·사회 구조 전체를 반영하는 복합적인 정책 영역입니다. 시장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탄소배출 등 환경오염 비용을 스스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 개입 없이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불가능합니다. 이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로 정의되며, 외부불경제를 가격에 반영하도록 하는 정책 수단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환경문제는 고도로 기술적이면서도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사안입니다. 정책학자 시어도어 로위는 "정책이 정치를 결정한다"고 말했으며, 위얼(Weale)은 정책 사안의 특성에 따라 정치적 연합과 담론이 달라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환경이라는 복합적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충돌을 전제로 하며, 그에 따라 선택되는 정책 수단 또한 단일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환경정책 접근은 기술 중심적이고 반응적이며, 규제를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보다 유연하고 경제적 유인을 활용하는 시장 기반 정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면서, 정부는 단일한 접근보다 ‘혼합형 정책 패키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환경정책은 단순한 기술적 해결이 아니라, 제도, 정치, 행위자 간 힘의 균형 속에서 작동하는 ‘정책과정의 산물’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까요?
2. 다중흐름모형(MSF)으로 보는 정책 형성 과정
정책이 어떻게 형성되고 채택되는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킹던(John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Multiple Streams Framework, MSF)입니다. 그는 왜 어떤 사안은 정책의제로 채택되고, 어떤 사안은 무시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 모형은 세 개의 흐름(stream)으로 구성됩니다: 문제흐름(problem stream), 정치흐름(politics stream), 정책흐름(policy stream)입니다.
문제흐름은 사회적으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이는 데이터(예: 환경오염 수치), 사건(예: 대형 산불, 미세먼지 급증), 기존 정책의 실패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발됩니다. 정치흐름은 선거 결과, 여론의 변화, 시민단체의 압력 등 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며, 정책흐름은 전문가와 관료들이 제안하는 다양한 정책 대안들로 구성됩니다.
이 세 가지 흐름이 우연히 또는 전략적으로 ‘수렴(convergence)’될 때, 정책결정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열립니다. 이 기회를 포착해 정책을 실현시키는 주체를 정책기업가(policy entrepreneur)라고 부르며, 이들은 여론, 정당, 관료조직을 설득하고 협상하여 정책 실행의 동력을 마련합니다.
환경정책은 특히 이 세 가지 흐름이 일치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다중흐름모형을 통해 그 형성과정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유용합니다. 최근에는 흐름이 불일치하는 상태에서 정책이 왜 지연되는지를 분석하는 데도 이 모형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3. 환경정책 수단의 4가지 유형
강의자료에서는 정책 수단(policy instruments)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규제(Regulation), 둘째는 자발적 메커니즘(Voluntary mechanisms), 셋째는 정부 지출(Government expenditure), 넷째는 시장 기반 수단(Market-based instruments, MBIs)입니다. 각 수단은 장단점이 뚜렷하며, 문제 성격에 따라 조합해 사용됩니다.
규제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장 배출 기준, 차량 배기가스 규제, 위험 폐기물 처리 등 강제적 통제에 기반합니다. 장점은 적용이 명확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있지만, 기업 저항, 규제 포획, 행정비용 등의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국가역량 부족으로 규제가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습니다.
자발적 수단은 기업이나 개인이 자율적으로 친환경 활동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친환경 소비나 윤리적 투자, 자동차 업계의 탄소 감축 자발 협약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참여자의 자발성에 의존하며, 실효성 확보를 위해 인센티브나 투명한 모니터링 체계가 요구됩니다.
정부 지출은 보조금이나 기반 시설 투자 등으로 친환경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신재생에너지 시설 설치 지원금이나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는 초기 투자 유도에 효과적이지만, 예산 부담이 크고 지속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마지막으로 시장 기반 수단은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 등 경제적 유인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을 기반으로 하며, 효율성과 유연성을 장점으로 합니다. 다만 정치적 반대, 기업 로비, 형평성 문제 등으로 현실에서는 도입이 제한적입니다.
4. 시장 기반 수단(MBI)의 가능성과 한계
MBI는 최근 환경정책에서 주목받고 있는 방식으로,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cap-and-trade)가 대표적입니다. 탄소세는 오염 행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해 행동을 억제하고, 세수를 환경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배출권 거래제는 국가 또는 지역 단위로 온실가스 총량(cap)을 설정한 뒤, 이를 기업에 할당하거나 경매로 배분하고,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규제보다 유연하고 경제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염을 줄인 기업은 여분의 배출권을 판매해 이익을 얻고, 감축 비용이 높은 기업은 구매로 대응할 수 있어 비용 효율적 감축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황산화물(SO2) 거래제나 EU의 ETS(배출권 거래제)는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첫째, 정치적으로 ‘오염할 권리를 돈 주고 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둘째, 세금 수준이나 배출권 가격이 낮아 실질적 감축 효과가 미미한 경우도 많습니다. 셋째, 소득 역진성 문제로 인해 저소득층이 더 큰 부담을 질 수 있다는 형평성 논란도 제기됩니다.
또한 규제 대상 기업과 정부 간 정보 비대칭, 로비, 규제 포획 등의 구조적 문제가 MBI의 효과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결국 MBI는 다른 수단들과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보완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단일 수단으로는 완벽한 해법이 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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