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 수입은 단순한 세금 징수 그 이상이다. 그것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 기업의 책임, 정부의 정책 능력을 모두 가늠하는 공공성과 정의의 척도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공공재정의 현실은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조세 회피와 탈세,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그리고 공공부채 증가라는 세 가지 이슈는 정부 수입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1. 조세 회피와 탈세: 정의의 사각지대
조세 회피(tax avoidance)와 탈세(tax evasion)는 세금을 줄이려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법적, 윤리적 무게는 매우 다르다. 탈세는 법률을 명백히 어기는 행위로, 세금을 고의로 숨기거나 거짓 신고를 통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조세 회피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세금을 줄이는 ‘합법적 절세’로 분류되지만, 그 의도와 효과 면에서 탈세와 유사한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조세 회피가 법적 구멍을 이용하는 만큼, 입법자가 의도한 법률의 ‘정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를 통해 수익을 세금이 거의 없는 나라로 이전함으로써 실질적인 세부담을 회피하는 행위는, 비록 합법이라 하더라도 조세정의에 어긋나는 행태로 비판받는다. 일반 국민은 소득이 노출된 상태에서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는 반면, 고소득자와 글로벌 기업은 복잡한 조세 전략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현실은 사회적 불신과 조세저항을 부추긴다.
2022/23 회계연도 영국의 조세 갭(tax gap)은 398억 파운드에 달했다. 이는 단지 회계상의 손실이 아니라, 국가가 복지·교육·보건 등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었던 자원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복지국가의 기반이 약화되고, 세금을 낼 능력이 있음에도 회피하는 이들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조세 회피는 국내 문제가 아닌 국제적 구조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영국령 케이맨 제도, 버진아일랜드, 스위스, 싱가포르 등 조세피난처는 초국적 기업들과 고액 자산가들의 조세 회피를 가능케 하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 지역들은 낮은 세율, 금융 비밀주의, 세무 당국과의 비협조 등으로 인해 국가 간 조세 협력을 어렵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세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이런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을 고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세무 정보 공유, 다국적 기업에 대한 최소 법인세 도입, 조세피난처 제재 등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의 대응이 요구된다. 조세 회피를 허용하는 구조는 곧 공공재정의 위기이며, 이는 시민사회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는 뿌리 깊은 문제로 작용한다.
2. 변화하는 노동시장과 세수 구조
현대 국가의 조세 수입 중 상당 부분은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고용과 임금이 정부 재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자영업의 증가, 플랫폼 노동의 확산, 프리랜서 확대, 저임금 비정규직의 고착화 등은 기존의 조세 시스템이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전통적 고용관계에서는 고용주와 근로자가 각각 일정 비율의 국민보험(NICs)을 부담하면서 정부가 안정적인 세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이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으며, 플랫폼 노동자는 아예 고용주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동일한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라도 고용 형태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지는 불공정이 발생한다. 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조세 불균형을 동시에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비정규직이나 단기 계약직은 소득이 일정치 않아, 세금 납부 예측이 어렵고 납세 순응도도 낮아질 수 있다. 이런 불안정 노동은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수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고용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오르면, 정부는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세입은 오히려 줄어드는 ‘재정 역설’이 발생한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은 단지 노동 문제를 넘어서 국가 재정 전반에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
특히 자동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기술 도입 등은 전통적인 일자리 자체를 줄일 수 있으며, 고소득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실제로 많은 인력을 고용하지 않으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세수 공백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조세 구조 역시 노동 중심에서 자산과 소비, 디지털 활동 중심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결국,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선 근로형태별 세율 격차 해소, 프리랜서 및 자영업자 대상 조세 체계 정비, 디지털 경제에 맞춘 과세 방식 도입 등 선제적이고 구조적인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 공정한 조세는 공정한 노동을 뒷받침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3. 공공부채: 미래 세대와의 계약
공공부채(public debt)는 정부가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차입한 자금의 총합을 말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되며,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투자자들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경기침체기에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 즉, 공공부채는 국가의 재정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공공부채는 여러 형태로 구분된다.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하는 외채(external debt), 국내에서 조달한 내부 채무(domestic debt), 외화로 표시된 내부 외화채무(foreign-currency domestic debt) 등이다. 이러한 채무 구조는 국가의 신용도, 환율 변동 리스크, 금리 부담 등에 따라 재정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는 외화표시 부채 비중이 높아 환율 하락 시 상환 부담이 급증했고, 이는 반복적인 디폴트 사태로 이어졌다.
공공부채는 흔히 예산 적자(budget deficit)와 혼동되기도 한다. 예산 적자는 특정 회계연도 동안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경우 발생하며, 이 적자가 누적되면 공공부채가 증가하게 된다. 예산 적자에도 종류가 있는데, 경제가 정상 상태임에도 구조적으로 적자가 발생하면 구조적 적자(structural deficit), 경기 불황 등의 사이클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적자는 경기순환적 적자(cyclical deficit)라고 부른다. 이 구분은 재정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공공부채는 반드시 나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적절히 활용된 공공부채는 미래 세대를 위한 장기 투자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속철도, 교육, 디지털 인프라 같은 공공투자는 미래 세대가 혜택을 받는 만큼, 지금의 재정부담을 일부 이전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또한 경기침체 시에는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고용과 소비를 유지시켜 경제 위기를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기에 시행한 ‘뉴딜 정책’이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유럽연합의 대규모 회복기금은 이런 공공부채의 긍정적 사례다.
하지만 과도한 공공부채는 분명한 위험도 동반한다. 우선 이자지급 부담이 커져 사회복지, 교육 등 다른 분야의 지출을 제약할 수 있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에 대해 지급할 이자가 많아질수록 재정 여력이 줄어들고, 새로운 정책에 대한 정치적 선택지가 좁아지게 된다. 또한 시장 신뢰도가 떨어지면 금리 인상이나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은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250%를 넘지만 자국민 보유 비중이 높아 위기감이 낮은 반면, 그리스는 외국계 투자자 의존도가 높아 부채 위기에 빠지기 쉬웠다.
더불어 공공부채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적자와 부채를 줄이기 위한 긴축정책은 종종 복지축소나 공공임금 동결 등으로 이어져 시민들의 저항을 초래한다. 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실시된 긴축정책은 경제회복을 지연시키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확장재정을 선택하면 재정 건전성 훼손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결국 부채의 적정 수준과 사용 방식은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조정되어야 할 문제다.
마치며
오늘날 공공재정이 직면한 과제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조세 회피와 탈세는 시민 사이의 신뢰와 공정성, 노동시장 변화는 국가의 포용성과 미래 세대의 기회, 공공부채는 국가 운영의 지속 가능성과 책임성을 시험하는 본질적 질문이다. 이 세 가지 이슈는 서로 맞물려 있으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세금을 ‘덜 내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나누는’ 방향으로 조세 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부유한 개인과 다국적 기업이 정당한 세금을 부담하고, 저임금·불안정 고용에 시달리는 시민들도 조세 시스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부채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미래를 향한 투자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 사용처와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하여 지속 가능하고 투명한 재정 운영을 추구해야 한다.
공공재정은 단순히 정부의 회계장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에 대한 집단적 선언이다. 정의로운 조세, 포용적인 노동시장, 책임 있는 부채 운용을 통해 우리는 더 건강한 민주주의, 더 회복력 있는 경제, 더 연대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공공재정은 곧 시민의 삶이며, 우리가 함께 설계해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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