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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예산과 재정관리의 핵심: 건전한 예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40대 유학&여행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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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예산이라고 하면 흔히 수입과 지출을 정리한 숫자 문서로 생각하기 쉽지만, 공공 부문에서의 예산은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단순한 재무계획이 아니라 정책 의지를 반영하고, 국가의 가치를 담는 사회적 약속이자 정치적 선언입니다. 정부가 어떤 분야에 얼마의 예산을 배정하느냐는 단지 회계적인 결정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행위와 직결됩니다.

 

공공예산은 정부 기관들이 국민의 세금 등 공공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가해주는 법적 근거입니다. 동시에 예산은 시민, 언론, 국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정부의 재정 운영을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드는 투명성의 장치이기도 합니다. 예산을 통해 정부는 자원의 출처와 사용 목적을 공개하고, 그에 대한 설명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실천이며, 공공성의 기반입니다.

 

또한, 공공예산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집행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예를 들어, 경기 부양을 위해 인프라 투자에 예산을 집중할 수도 있고, 소득 재분배를 위해 복지 지출을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예산은 단순히 ‘얼마를 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며, 이는 정부의 철학과 시대적 과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제 성장, 사회 안전망, 교육 기회 확대 등 예산은 다양한 국가 목표를 실현하는 매개체입니다.

 

나아가 예산은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각 부처, 지방정부,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자신들의 이해와 필요를 주장하며 예산 확보를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정책의 우선순위가 결정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때때로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민주적 의사결정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결국 예산은 단순한 금액의 합이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다양한 형태의 예산, 그 의미는?

공공예산은 그 목적과 구성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구분됩니다. 각 예산의 형태는 단순한 회계적 분류를 넘어, 정부의 정책 실행 방식과 조직 문화, 그리고 시민과의 관계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예산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그 집행의 유연성, 투명성, 책임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행정예산(administrative budgeting)은 부처나 기관 단위로 지출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입니다. 이 방식은 조직 중심적인 접근을 가능케 하지만, 정책 성과나 결과 중심보다는 단순 집행에 초점을 두는 한계도 있습니다. 반면 성과예산(performance budgeting)은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성과 지표를 중심으로 예산을 배정하여, 공공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방식입니다.

 

예산은 회계 기준에 따라 현금주의(cash-based)발생주의(accrual-based)로 나뉘기도 합니다. 현금주의는 실제 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기준으로 회계 처리를 하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회계상 정확성과 장기적 책임성은 낮은 편입니다. 반면 발생주의는 거래가 실제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회계 처리를 하여 보다 정확한 재정 상태를 반영하지만, 복잡한 회계 능력을 요구합니다.

 

또한 의무기반 예산(obligation-based budgeting)은 법적 계약이나 정책적 약속에 따라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을 중심으로 예산을 구성합니다. 예컨대 연금, 공공 임대계약, 국제원조 등 법적으로 보장된 지출 항목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예산은 유연성은 떨어지지만 재정 운용의 안정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시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예산(participatory budgeting)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방정부 중심으로 활발히 도입되며, 행정의 투명성과 시민의 주체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산의 형태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행정철학과 정치문화의 반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예산의 유연성, 책임성, 효율성에 차이가 발생하며, 정부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는지도 드러납니다. 결국 효과적인 예산 운영을 위해서는 국가 상황에 맞는 복합적 예산 구조의 설계가 필요하며, 이는 공공행정의 전략적 능력과 직결됩니다.

3. 재정관리는 전략이다

공공재정이 단순한 숫자의 관리가 아니라 전략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라는 점은 간과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의 자원은 유한하며, 다양한 정책 목표와 이해관계자 간의 조율이 요구되기 때문에 재정관리 그 자체가 전략 행위가 됩니다. 전략적 재정관리는 단순한 지출 통제가 아닌, 장기적인 경제·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핵심 요소는 재정 규율(fiscal discipline)입니다. 이는 정부의 지출을 일정 한도 내에서 통제하고, 장기적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부채 상한 설정, 균형 재정 규칙, 법률에 의한 지출 제한 등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안정성장협약(SGP)은 회원국의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도록 요구하며, 이는 대표적인 재정 규율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도도 정치적 압박이나 비상상황에서는 무력화될 수 있기에, 제도 자체의 설계와 운용상의 신뢰 확보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전략적 우선순위 설정(strategic prioritisation)입니다. 모든 정책이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아니며,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정치적이면서도 기술적인 결정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과 국방, 보건, 복지 등 다양한 분야가 동시에 예산을 요구하지만, 국가의 상황과 정책 목표에 따라 우선순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의 질과 신뢰도, 정책성과에 대한 평가, 이해관계자 간 협의 구조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특히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필요를 균형 있게 고려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통계 시스템과 정교한 회계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입니다. 예산은 고정된 계획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과 위기 상황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COVID-19 팬데믹 당시 대부분의 국가는 기존 예산 계획을 유보하고 긴급재정을 편성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재정 구조와 예비비 제도, 유연한 법적 틀이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재정관리는 정책-계획-예산 간의 연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계획은 있지만 예산이 배정되지 않거나, 예산은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연결되지 않는 경우, 국가 전체의 실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전략적 목표를 예산 구조와 통합적으로 연결시키는 ‘정책기반 예산제도(Performance-based budgeting)’ 같은 혁신적 접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4. 예산은 책임이다

공공예산은 단순한 행정문서가 아닌, 정부의 책무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예산을 통해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기준과 원칙을 따랐는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평가와 감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바로 ‘책임성(accountability)’의 문제이며, 현대 민주행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재정 투명성(fiscal transparency)은 책임성의 전제조건입니다. 시민은 자신이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이 과정이 불분명하거나 자료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조세저항이나 정치적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OECD나 IMF는 회원국들에게 투명한 예산 편성과 결산 공개, 감사보고서의 접근성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열린재정’ 시스템처럼 누구나 온라인으로 예산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그 일환입니다.

 

둘째, 다층적 책임 구조의 정립이 중요합니다. 예산과 지출 책임은 단지 중앙정부의 재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부처,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율성과 권한을 갖고 예산을 집행하지만, 동시에 국민 앞에서 결과에 대한 설명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를 위한 체계적인 성과 평가 시스템과 내부 감사, 외부 감사가 필요합니다.

 

셋째, 참여와 감시의 제도화가 책임성을 강화합니다. 시민사회와 언론, 국회, 감사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을 감시하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참여예산제도(participatory budgeting)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들이 직접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 편성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는 단순히 재정 효율성뿐 아니라, 시민의 민주적 역량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도 기여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산은 정치와 경제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산은 기술적인 계산 이상의 문제이며, 정치적 결단과 가치 판단이 녹아 있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책임 있는 예산 편성과 집행은 단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됩니다. 예산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될 때, 국민의 신뢰는 강화되고, 정부는 보다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산에 대한 책임은 곧 국가 운영의 책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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