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독서계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소설가 김훈의 『하얼빈』이다. 이 책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 안중근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한 역사 소설로, 단지 한 인물의 영웅담에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 시대의 모순과 인간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김훈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문장과 서사가 더해져, 독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1. 총과 사상 사이 – 안중근의 내면을 그리다
『하얼빈』은 1909년 10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후의 안중근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김훈은 그저 사건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인간 안중근의 고민과 사유를 정교하게 직조해낸다. 조국의 독립, 동양 평화, 정의에 대한 신념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년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 안중근은 결코 이상화된 영웅이 아니다. 그는 세계를 고민하고, 죽음을 각오하며, 타인의 고통과 역사의 무게를 감내하는 인간이다. 작가는 그의 고독과 결심,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사상적 중심을 통해 독자에게 한 인간이 품은 신념의 깊이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김훈은 안중근을 단지 역사 속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신념과 행동 사이의 간극, 삶과 죽음 사이의 공포, 가족을 향한 애틋함과 민족을 향한 책무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안중근을 그려낸다. 특히, 그가 이토를 저격하기까지의 내면적 갈등과 그 결심의 배경은 단순한 '의거' 이상의 역사적 함의를 갖는다.
작가는 안중근의 생각을 통해, 한 인간이 어떤 철학과 역사 인식, 사명감을 가질 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자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안중근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실하고, 더 깊이 우리 마음에 다가온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가 위인을 대하는 기존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만든다.
2. 김훈 문장의 힘 – 역사와 문학의 절묘한 조화
김훈의 문장은 불필요한 수식 없이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에서 보여준 역사 인물의 내면 묘사와 시대 인식은 『하얼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문장으로 시간을 응축하고, 그 시간 속에서 인물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얼빈』에서는 당시 조선과 동북아 정세, 러시아 제국의 분위기,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 등이 배경으로 치밀하게 엮여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서사는 인물 안중근을 중심으로 압축되며,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러한 김훈의 문학적 감각은 단지 '역사를 배운다'는 느낌이 아니라, 한 시대의 공기를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김훈의 문장은 단단하면서도 여백이 있다. 그는 과장하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정확히 찌른다. 특히 안중근의 고뇌와 결심을 그려내는 데 있어,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인물의 심리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의 서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대의 바람결까지 느끼게 만든다.
또한 김훈은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독자가 감정적으로 인물과 동화되도록 유도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분노,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놓인 조선의 위태로운 입장, 하얼빈이라는 공간의 차가운 공기까지도 문장을 통해 살아난다. 이런 방식은 『하얼빈』을 단지 한 사건의 기록이 아닌, 문학적 성찰로 이끄는 중요한 장치다.
3.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하얼빈』을 읽는 것은 단지 과거를 되짚는 일이 아니다. 김훈은 안중근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되묻게 만든다. 자유와 정의, 민족과 인간,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안중근의 총성과 침묵은 단지 1909년의 선택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는다.
김훈은 독자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인물의 삶을 조용히 따라가며,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한다. 안중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의 결단이 갖는 의미가 오늘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곱씹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독자 스스로가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이러한 질문은 결국 개인의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단지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하는 지금, '정의'와 '책임', '희생' 같은 단어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얼빈』은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통해 그 본질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는 오늘의 청년, 오늘의 부모, 오늘의 지식인 누구에게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다.
4. 『하얼빈』을 추천하는 이유
이 책은 안중근을 단지 ‘의사’나 ‘영웅’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바로 이런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감각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과 윤리를 직면하게 하는 것.
김훈의 『하얼빈』은 그러한 의미에서 탁월한 역사소설이다. 독립운동, 제국주의, 민족주의, 평화 등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한 인물의 사유와 결단으로 집약시킨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읽어야 할 ‘역사의 얼굴’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한 인물의 내면과 삶을 정교하게 구성한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거나, 영웅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안중근의 철학적 고뇌와 감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이런 서사 방식은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에게 한층 더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어떤 세상을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가.
마무리 – 침묵 이후의 총성, 그리고 다시 쓰는 역사
『하얼빈』은 단지 안중근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의란 무엇이고, 평화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김훈은 소설을 통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이 오히려 더 오래, 깊이 우리 곁에 머문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이나, 깊이 있는 문학을 찾는 이들, 혹은 지금의 시대에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얼빈』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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