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은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20세기 중반까지는 행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행태주의(Behavioralism)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1960년대 이후 기존 행정학이 실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한 것이 후기 행태주의(Post-Behavioralism)이며, 후기 행태주의의 연장선에서 더욱 실천적이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신행정론(New Public Administration, NPA)이다.
신행정론은 기존의 전통적 행정학이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비판하면서, 공공행정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가 단순히 효율적인 조직 운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Equity)을 고려하여 정책을 설계하고 행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후기 행태주의에서 제기한 "행정학이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이번 글에서는 신행정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후기 행태주의와의 관계, 신행정론의 주요 개념과 특징, 그리고 신행정론의 한계와 현대 행정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신행정론이 단순한 이론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의해 탄생한 실천적 행정학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후기 행태주의와 신행정론의 연관성
행태주의는 20세기 중반 행정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정치학과 행정학에서 "가치 중립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강조한 행태주의는 실험과 통계를 활용하여 행정 현상을 분석하려 했다. 그러나 행태주의는 사회 현실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사회를 설명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의 역할보다는, 데이터를 통해 행정 현상을 분석하는 데 치중했던 것이다.
이러한 행태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바로 후기 행태주의였다. 후기 행태주의는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행정학을 강조하면서, 연구자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행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격변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빈부 격차, 베트남 전쟁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데이터 분석을 넘어, 적극적인 행정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후기 행태주의의 문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하고 실천적인 행정 모델로 발전시킨 것이 신행정론이다. 후기 행태주의가 "행정학은 가치 중립적이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신행정론은 이를 기반으로 "행정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구이며, 특히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따라서 신행정론은 후기 행태주의의 연장선에서 출발한 보다 실천적인 행정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신행정론의 등장 배경과 주요 학자
신행정론은 1960~7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시기는 미국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기존의 행정 패러다임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던 시기였다. 행정학은 기존에 효율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모델을 따르고 있었으나, 미국 사회에서 발생한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빈부 격차 확대 등의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신행정론의 대표적인 학자는 드와이트 왈도(Dwight Waldo), 프레드릭슨(H. George Frederickson), 프랭크 마리니(Frank Marini) 등이 있다.
- 드와이트 왈도는 후기 행태주의를 비판하면서, 행정학이 가치 중립적일 수 없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프레드릭슨은 신행정론의 핵심 개념인 사회적 형평성(Equity)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형평성 있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프랭크 마리니는 신행정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자로, 신행정론의 주요 특징과 정책 적용 방안을 연구했다.
특히, 1968년 미니애폴리스 컨퍼런스에서 학자들은 기존 행정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행정은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며, 단순한 능률성 추구를 넘어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신행정론을 선언했다. 이는 기존의 행정학이 관료제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데 그친 반면, 신행정론이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정을 강조한 전환점이었다.
신행정론의 주요 개념과 특징
사회적 형평성(Equity)의 강조
기존 행정학이 능률성과 효과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면, 신행정론은 형평성(Equity)을 새로운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 능률성(Efficiency):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
- 형평성(Equity): 모든 시민이 공정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기존 행정학에서는 "공공서비스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신행정론에서는 "사회적 약자는 더 많은 공공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즉,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교육, 보건, 복지 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공립학교의 운영을 능률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학생 수가 적은 지역의 학교를 폐쇄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형평성의 관점에서 보면, 해당 지역 학생들이 교육 기회를 잃게 되므로, 정부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공공서비스를 단순히 동일하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신행정론의 핵심 논리다.
행정의 적극적 개입과 시민 참여 확대
신행정론은 단순히 정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적극적인 행정 개입을 요구했다. 또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기존의 관료적 행정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배제했던 점을 비판한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신행정론은 다양한 참여 민주주의 모델을 제안했다. 대표적으로 공동체 중심 행정(Community-Based Administration)과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Citizen Engagement Governance)가 있다. 이는 단순히 정부가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정부와 협력하는 모델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의 전자정부(E-Government)와 스마트 행정(Smart Administration)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공공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은 신행정론이 강조한 시민 참여의 현대적 발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의 역할 변화
기존의 공무원은 행정 절차를 수행하는 "관리자"로 인식되었지만, 신행정론에서는 공무원을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개혁가(reformer)로 정의했다. 즉, 공무원은 단순히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 옹호적 행정(Advocacy Administration)이라는 개념으로도 발전했다. 이는 공무원이 단순한 행정 집행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빈곤층 지원 정책을 시행할 때, 단순히 서류 절차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책을 안내하고, 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강조된다.
신행정론의 한계와 현대 행정학에 미친 영향
신행정론의 한계
신행정론은 사회적 형평성을 강조하며 기존 행정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데 기여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형평성을 강조한 나머지 능률성과 효과성을 간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중요하지만, 무분별한 복지 확대는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주택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형평성을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산 문제로 인해 지속 가능성이 낮아질 위험이 있다.
둘째, 공무원의 역할 변화에 대한 현실적 한계가 존재했다. 신행정론은 공무원이 사회 개혁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실제 공무원 조직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전통적 관료제에서는 정책 중립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공무원이 정책 옹호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셋째,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신행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책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한 결과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으며, 정책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높였다.
현대 행정학에 미친 영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행정론은 현대 행정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등장한 신공공서비스론(New Public Service)과 뉴거버넌스(New Governance)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현대의 공공 행정에서는 공공가치론(Public Value Theory)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공공가치론은 신행정론의 핵심 개념인 형평성과 시민 참여를 보다 발전시켜, "정부의 역할은 시민들이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행정의 투명성과 협력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신행정론은 단순한 이론적 변화가 아니라, 현대 행정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사회적 형평성을 강조하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이유도 신행정론이 제시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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