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크 성벽길, 왜 특별할까요?
영국 북부의 아름다운 도시 요크(York)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 걸음걸음마다 고풍스러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요크 성벽길(York City Walls)은 바로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공간으로, 요크의 시간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단순한 유적지의 개념을 넘어, 이 길은 지금도 도시를 에워싸며 시민들의 일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크 성벽은 영국에 남아 있는 도시 성벽 중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길이는 약 3.4km에 달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성벽이 단절되지 않고 도심 전체를 하나의 원형처럼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벽 위에 오르면 현대의 도시 풍경과 중세의 흔적이 동시에 펼쳐지는 독특한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성벽길은 아무런 입장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오를 수 있으며, 각각의 구간마다 계단과 출입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특히 아침 일찍이나 해 질 무렵에 걷기에 좋으며, 현지인들도 산책로나 조깅 코스로 자주 이용하는 장소입니다. 여행 중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이 성벽 위 산책만큼 만족스러운 선택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요크 성벽은 도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현대적 도시계획과 조화를 이루는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수백 년 전 방어와 통제를 위해 세워졌던 이 성벽이 오늘날에는 문화와 관광의 길로 바뀌었다는 점은 도시가 얼마나 유연하게 과거를 보존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2. 2,000년에 가까운 시간의 흔적
요크 성벽의 역사는 무려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후 71년, 로마인들이 브리타니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요크(로마식 지명: 에보라쿰, Eboracum)를 군사 요충지로 삼기 위해 성벽을 축조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이 당시의 성벽은 대부분 돌로 지어졌으며, 당시 요크는 로마 제국의 북방 통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요크는 군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866년, 바이킹이 요크를 침공하면서 로마 시대의 성벽은 흙에 묻히고 사라지게 됩니다. 바이킹은 그 위에 나무 울타리를 세워 자신들의 방식대로 방어체계를 구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의 석조 성벽은 오랫동안 잊힌 채로 지하에 남아 있었고, 중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요크는 다시 한 번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됩니다.
13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당시의 요크 시민들과 통치자들은 바이킹 시대의 나무 울타리를 허물고, 로마 시대 성벽 위에 다시 돌로 성곽을 복원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재건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되찾는 작업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성벽의 대부분은 이 시기의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유럽 도시에서 18세기 이후 성벽은 도시 팽창과 교통 개선을 위해 철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크는 달랐습니다. 방어 기능을 잃은 이후에도 성벽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산으로 인식하고 보존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판단 덕분에 오늘날 요크 성벽은 유럽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도시 성벽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길을 찾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습니다.
3. 네 개의 성문, 도시의 시간을 잇다
요크 성벽에는 네 개의 주요 성문(Bar)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성문들은 과거에는 도시의 주요 출입구 역할을 했으며, 현재는 각각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부담바(Bootham Bar): 로마 성문의 자리를 계승한 북쪽 성문입니다. 요크 민스터 대성당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초입에서 성벽 산책을 시작하기에도 적합한 장소입니다.
- 몽바(Monk Bar): 가장 잘 보존된 요새형 성문으로, 내부에는 중세 감옥을 재현한 작은 박물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 웜게이트바(Walmgate Bar): 유일하게 목재 차양이 남아 있는 성문으로, 당시 방어 구조의 흔적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미클게이트바(Micklegate Bar): 예전에는 왕과 귀족들이 요크에 입성할 때 통과하던 상징적인 성문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반역자의 머리가 내걸리던 암울한 기억도 담고 있는 곳이지요.
각 성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이며,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성문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와 배경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4. 성벽 위에서 마주하는 요크의 풍경
성벽 위를 걷는 동안 요크라는 도시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웅장한 고딕 양식의 요크 민스터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지고, 또 다른 방향으로는 조용한 주택가와 현대적인 거리의 풍경이 어우러집니다.
봄이면 성벽 아래로 노란 수선화가 만개해 성벽의 회색빛과 아름다운 대비를 이루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도시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성벽은 도심과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걷는 내내 마치 도심 밖 산책로에 있는 듯한 여유로움을 선사합니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 인파가 많지 않을 때 걷는 성벽길은 정말 특별합니다. 조용히 걷는 발걸음 위로 새소리만 들리고, 도시의 바쁜 소음은 멀리 밀려나 있는 듯한 고요함이 느껴집니다.
5. 요크 성벽, 여행자에게 주는 선물
요크 성벽길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구경하는 코스가 아닙니다. 이 길 위를 걷는다는 것은, 요크라는 도시의 역사와 일상, 그리고 변화를 함께 마주하는 경험입니다. 무엇보다 누구나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도심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 속에서 진짜 요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크를 처음 방문하신다면, 성벽 위에서 하루를 시작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지도로 보기에는 길어 보일 수 있지만, 각 구간마다 계단이 있어 원하는 만큼만 걸어도 좋습니다. 여행에 특별한 리듬을 주는 이 산책로는, 분명 기억에 오래 남을 요크의 풍경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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