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형성의 창을 여는 열쇠 – 다중흐름모형(Multiple Streams Framework)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누군가의 결정? 정부의 필요? 아니면 단순한 여론의 압력일까? 이러한 질문에 흥미롭게 답해주는 이론이 있다. 바로 존 킹던(John W. Kingdon)이 제시한 다중흐름모형(Multiple Streams Framework, MSF)이다. 이 이론은 정책이 어떻게 형성되고 채택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지금도 널리 활용되는 고전적인 정책학 이론 중 하나이다.

1. 다중흐름모형이란?

다중흐름모형은 정책 결정 과정을 세 가지 독립적인 흐름, 즉 문제 흐름(problem stream), 정책 흐름(policy stream), 정치 흐름(politics stream)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세 흐름은 평소에는 각기 독립적으로 흘러가지만, 특정한 시점에서 이들이 결합하면 정책 창(policy window)이 열리며 새로운 정책이 채택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발생한다. 문제 흐름은 사회적으로 해결이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문제들로 구성되며, 정책 흐름은 전문가나 정책 커뮤니티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대안들이다. 정치 흐름은 정권교체, 선거, 여론 변화 등 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말한다. 이 세 흐름이 하나로 모일 때, 즉 문제의 긴급성, 준비된 대안, 정치적 여건이 일치할 때 비로소 정책 변화가 가능해진다.

 

문제 흐름은 단순히 발생한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공공의 문제로 인식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예컨대 동일한 사건이라도 언론 보도, 시민의 항의, 여론의 압력 등이 결합되지 않으면 정책 의제로 떠오르지 못한다. 정책 흐름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해결책이 경쟁하며 부상하는 장이다.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면 채택되지 못하고 사장되며, 그 중 실행 가능한 정책만이 남게 된다. 정치 흐름은 정권의 이념, 정당 구도, 선거 결과, 사회적 분위기 등 다양한 정치적 요소를 포함하며, 종종 정책 형성과정에서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다중흐름모형의 핵심은 바로 이 세 흐름이 모두 동시에 유효하게 작용할 때, 정책 변화의 실질적인 조건이 갖추어진다는 데 있다.

 

이 이론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자 할 때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처럼 오랫동안 논의되었지만 쉽게 정책화되지 못했던 주제들이 정치 흐름과 맞물리는 순간 급격히 정책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또한 정책결정자가 일방적으로 의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흐름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중흐름모형은 단지 설명의 도구를 넘어서 정책 실무자들에게 실질적인 전략의 틀로서 작용할 수 있다.

2. 정책 창(policy window)의 개념

정책 창은 정책 결정자들이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이 창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열렸다가 닫히는 ‘기회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창이 열렸을 때, 정책 커뮤니티나 문제 제기자들이 사전에 준비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서 탈원전 논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정권 교체로 인한 정치 흐름, 원전 사고나 환경 문제에 대한 국민적 문제의식,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 확대라는 준비된 대안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정책 창은 단순한 정치적 기회가 아니라, 세 가지 흐름이 맞물릴 때 비로소 열리는 구조적 틀이다.

 

정책 창은 주로 정치적 사건이나 위기 상황에 의해 열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천재지변, 대형 사고, 국제적 압박 등은 여론과 정치권의 주의를 특정 문제에 집중시키며, 기존의 정책 논의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창이 열릴 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문제 인식은 확산되어도 정책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 창의 개념은 단순한 기회라기보다, 준비된 대안과 전략이 있어야 비로소 현실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정책 창이 열렸을 때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가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좌우한다.

 

이 개념은 정책 형성의 불확실성과 기회 중심의 본질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매우 실용적이다. 일반적인 정책 분석에서는 논리적 단계나 계획 중심의 접근이 강조되지만, 정책 창의 개념은 예기치 못한 사건과 기회가 핵심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현대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는 정책 창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평소 정책 커뮤니티와 이해관계자들이 끊임없이 준비하고 대응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국 다중흐름모형에서 정책 창은 ‘정책 기회의 순간’을 구조화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정책 변화가 왜 특정 시점에 발생했는지, 왜 어떤 문제는 논의만 되다 흐지부지됐는지를 보다 명확히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정책 커뮤니티나 실무자는 특정 사안에 대해 언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3. 정책 기업가(Policy Entrepreneur)의 역할

다중흐름모형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바로 '정책 기업가(Policy Entrepreneur)'이다. 이들은 문제, 정책, 정치라는 세 가지 흐름을 능동적으로 연결하며 정책 창이 열릴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 창이 열리는 시점을 포착하고 그 기회를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끄는 추진력을 제공한다.

 

정책 기업가는 정치인, 고위 공무원, 정책 전문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 다양한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보통 평소부터 특정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책 대안을 구체화해온 사람들이다. 정책 창이 열리는 순간에 이미 정제된 대안을 가지고 있고, 정책결정자 또는 여론에 효과적으로 이를 전달할 수 있는 영향력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정책 커뮤니티 내에서의 신뢰와 네트워크, 타이밍을 보는 안목, 전략적 설득력 등 다양한 역량을 갖춘 인물들이다.

 

또한 이들은 여론을 조직하고 언론을 활용하는 데 능숙하며, 필요한 경우 정책결정자에게 로비를 하거나 대중을 상대로 이슈를 확대시킬 수 있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정책 기업가는 단순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된 문제의식과 해결책을 가진 주체로서, 특정 사안을 정책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활동은 때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정책 변화의 숨은 원동력이 되며, 다중흐름모형을 현실에서 작동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정책 기업가의 존재는 다중흐름모형이 갖는 실천적 강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단순히 흐름이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것을 연결하려 노력할 때 변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복잡한 정책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창출하고, 준비된 정책을 실현시키는 연결고리이자 촉진자다.

4. 다중흐름모형의 장점과 한계

다중흐름모형의 가장 큰 장점은 정책 결정 과정을 단순한 합리적 절차가 아니라 복잡하고 유동적인 현실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책 결정 이론들이 이상적인 조건과 계층적 논리에 따라 문제 해결 과정을 설명하는 반면, 다중흐름모형은 실제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성과 정치적 맥락을 적극 반영한다. 이 이론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제도, 우연한 사건 등이 어떻게 맞물려 정책을 형성하는지를 설명함으로써, 현실 행정 환경에 보다 적합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특히 다중흐름모형은 '타이밍'과 '정치적 기회'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정책 변화가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동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문제 제기자, 정책 전문가, 정책 기업가 등 다양한 행위자의 역할을 반영하고 있어, 정책 과정에서 사람과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정책 형성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행정학도나 실무자에게 매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 모형 역시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세 가지 흐름이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이다. 흐름 간 결합의 구체적 메커니즘이나 조건이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분석에 있어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다. 또한 정책 창이 얼마나 자주, 어떤 조건에서,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에 대한 정량적 예측이 어렵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다중흐름모형은 설명력이 뛰어난 반면, 예측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실무적 차원에서 정책을 설계하거나 사전 대응 전략을 수립할 때 다소 아쉬운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형은 정책 형성과정에서 '왜 지금 이 정책이 등장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해주며,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현대 정책 환경에서 그 가치는 여전히 높다.

5. 다중흐름모형의 실제 적용 사례

다중흐름모형은 다양한 실제 정책 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분석 도구로 평가받는다. 이 이론은 정책이 단순히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 인식, 정책 대안, 정치적 여건이 함께 작동할 때 현실화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특히 복잡한 사회문제나 정치 환경에서 ‘왜 어떤 정책은 채택되고, 어떤 정책은 무산되는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데 유리하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살펴보면, 다중흐름모형이 매우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다. 2020년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급증했고, 한국 사회 내에서도 미세먼지 문제와 이상기후로 인한 불안이 고조되면서 국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는 명백한 문제 흐름의 형성이다. 동시에 정부와 민간에서는 이미 신재생에너지 확대, 전기차 보급, 녹색 기술 등에 대한 정책 대안이 준비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 흐름이 존재한 상태에서 2022년 정권 교체와 함께 정치적 우선순위가 변화하며 정치 흐름이 뒷받침되었고, 결과적으로 탄소중립 선언 및 관련 정책의 급진적 추진이 가능해졌다. 이 세 가지 흐름이 결합되면서 정책 창이 열렸고, 그 기회를 포착한 정부가 빠르게 정책을 실행에 옮긴 사례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대표 사례로는 미국의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 ACA) 도입 과정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의료 사각지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였다. 이는 문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의료보장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안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비교적 실행 가능한 복수의 대안들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정책 흐름이 준비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정권으로서 정치적 다수당을 형성한 상황은 정치 흐름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 세 흐름이 맞물리며 오바마케어는 현실화될 수 있었다.

 

이처럼 다중흐름모형은 단지 이론적 설명을 넘어, 실제 정책 사례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해석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특히 예기치 않은 사회적 위기, 급변하는 국제 정세, 여론의 변화 등 외부 요인이 정책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실무자와 연구자 모두에게 중요한 도구가 된다.

마무리 – 정책의 기회를 만드는 이해의 틀

다중흐름모형은 정책 형성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단선적이고 계획 중심의 정책 결정 이론과 달리, 이 모형은 정책이 현실에서 채택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흐름이 결합하고, 그 흐름을 연결하는 주체가 존재하며,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정책 환경에서 더욱 설득력 있는 접근 방식이다.

 

정책은 단순히 옳은 대안을 제시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그 문제가 충분히 인식되어야 하며, 이미 정제된 정책 대안이 존재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여기에 정책 기업가라는 촉진자가 있어야 세 흐름이 실질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충족될 때 비로소 정책 창이 열리고, 정책은 현실로 이어진다.

 

다중흐름모형은 정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왜 지금?', '왜 이 정책인가?'라는 질문에 깊이 있는 답변을 제공하며, 정책을 실무에서 다루는 이들에게는 기회를 포착하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특히 예기치 못한 위기나 변화 속에서 정책을 주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모형은 효과적인 사고 도구가 될 수 있다. 현실의 정치와 정책은 종종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이러한 복잡성을 구조화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는 더 나은 정책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